내 그림

어릴 적부터 꽤나 필기구에 관심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심의 굵기에 따라, 잡는 방법에 따라, 잡는 압력에 따라 펼쳐보이는 세상은 무궁무진하다.

초등학교 때에는 여느 만화가 못지 않게 만화캐릭터를 유별나게 폼나게 그려내는 친구가 있었다. 호기심 백백, 욕심 많은 나로선 아닌 척 하면서도 어깨너머로 그 가능성에 대해 많은 애정을 보였다.

친구의 실력이 탐이 나곤 했었다.
슥슥 대충 연필을 굴리는가 싶었는데 어느 샌가 2등신의-머리가 크고 체구가 작은, 귀여운- 멋진 캐릭터가 빈 종이를 메우기 시작했었다. 옆에 지켜보는데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도 그렇게 그려보고 싶은 맘에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따라그리기를 수번 해봤지만 항상 제자리였었다.

어릴 적 그러기를 한참 후에, 중학교 때 미술 시간이었다.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게 하셨고 평가를 하겠단 선생님의 청천벽력같은 말씀..
그리는 중에 문득 거울을 보며 본인의 얼굴 생김새를 뜯어 본다.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요목조목, 최대한 실감나게 그려봐야지 하는 기대 반에 전체 얼굴형에 눈은 어디쯤, 눈썹은 어디, 귀 선, 턱 선이 시작하는 부분을 알게 됐다. 이런게 누구 하나 알려주지 않았지만 저절로 알아가는 것 중 하나인가 싶었다.
당연 자화상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도 좋았고 스스로도 조금은 붕 뜬 느낌이었다.

그런 이후, 종이, 연필이 쥐어져 있으면 연습장이든, 교과서든 어디든 그림이 없던 곳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많이 줄긴 했어도 아직 직장에서 회의 중에 간간히 어느샌가 끄적끄적 댄 흔적이 남아 있다.

옆 후다닥 판은 ^-^ 대학 수강신청 책자 표지에다 그린 걸 스캔 뜨고 대충 배경만 지워 저장해 둔 건데 우연찮게 찾아냈다.

사진, 글, 그림, 음악…

예술은 기억, 추억을 그리는 도구가 된다.

어리지만 더 어렸을 적의 기억을 되새겨봐야겠다. 재미가 솔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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